명절이 두려운 사람들 — 설 연휴가 불러오는 돌싱 이혼의 그림자
“명절만 되면 속이 울렁거린다”는 말,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따뜻한 시간이어야 할 명절이, 어느 순간부터 한 해 중 가장 큰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는 시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초혼 시절, 이혼 후 홀로서기(돌싱), 그리고 재혼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남녀들의 이야기에서, 명절이 단순한 스트레스의 계절이 아니라 때로는 관계의 분기점이 된다는 사실이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같은 명절 다른 고통
재혼 전문 결혼정보회사 온리-유는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와 공동으로 2026년 2월 9일부터 14일까지 전국의 재혼 생활 중인 기혼자 516명(남녀 각 258명)을 대상으로 명절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였습니다. 이 조사는 단순히 “명절이 힘들다”는 피로감을 넘어, 남성과 여성이 각각 어떤 지점에서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먼저 남성의 경우, ‘전혼(초혼) 시기에 설 명절이 되면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는 질문에 26.4%가 ‘아내 눈치 보기’를 1순위로 꼽았습니다. 이어 ‘아내와의 일정 조율’이 24.3%, ‘경제적 부담’이 21.3%로 뒤를 이었습니다. 비에나래 관계자는 “남성은 시가에서 마지못해 차례를 준비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흔히 명절 스트레스는 여성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남성 역시 가족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떠안으며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여성은 달랐습니다. 여성의 28.3%는 ‘시가 가족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고, ‘차례 음식 준비'(25.2%), ‘남편과의 일정 조율'(20.9%)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온리-유 관계자는 “여성은 차례 준비 등 신체적 부담도 크지만, 시가의 차가운 시선에서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명절 전후 며느리를 향한 시선이 여전히 무겁게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이혼 후’가 더 괴롭다? 돌싱 남성의 공허함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명절 스트레스가 가장 컸던 혼인 상태”에 대한 질문의 결과입니다. 여성은 ‘초혼’ 시기(35.3%)를 압도적인 1위로 꼽은 반면, 남성은 뜻밖에도 ‘돌싱’ 시기(31.0%)를 1순위로 선택하였습니다. 여성은 이어 재혼(27.1%), 미혼(19.8%), 돌싱(17.8%) 순이었고, 남성은 초혼(28.7%), 재혼(26.0%), 미혼(14.3%)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남성은 이혼 이후의 시기에 명절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느끼는 걸까요? 온리-유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명절에는 가족 중심 문화가 강조되는데, 돌싱 남성은 가정에서 이탈했다는 상실감과 자녀와의 교류 문제 등으로 공허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명절 풍경 속에서, 가정을 잃은 남성이 느끼는 고독감과 소외감이 얼마나 깊은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재혼 이후에도 스트레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재혼 26.0%) 역시, 명절이라는 시간이 관계의 역사와 상처를 고스란히 되살린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명절 이후, 법원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이러한 명절 스트레스는 단순히 감정적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혼율 통계에서도 명절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이혼 건수는 9만 건 초반대를 기록하였으며, 설 연휴가 포함된 1~3월의 이혼 비중이 다른 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명절을 보내며 쌓인 갈등과 피로감이 관계 종료라는 극단적인 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재혼 부부들의 경험담을 다룬 보도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전 사위나 전 며느리의 외모와 집안을 험담할 때”, “전 배우자 자녀와 현재 가족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때” 재혼 부부들이 가장 큰 갈등을 겪는다는 사례들이 전해집니다. 한 번 결혼과 이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명절은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복잡한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명절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명절 스트레스는 단순히 ‘힘든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변화하지 못한 성 역할의 불균형, 세대 간 갈등, 이혼과 재혼에 대한 사회적 낙인, 그리고 ‘가족은 마땅히 화목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특히 재혼 가정이나 돌싱 상태의 개인들에게 명절은 그 복잡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조사에서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명절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명절은 여자들만 힘들다”는 통념이 얼마나 피상적인 시각인지, 그리고 남성 또한 명절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억눌리고 있음을 이 조사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전문가들은 명절 갈등을 줄이기 위한 첫걸음으로 ‘사전 소통’을 강조합니다. 명절 일정과 역할 분담을 미리 충분히 논의하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명절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완벽한 명절’을 향한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재혼 가정이라면 서로의 이전 결혼과 가족 관계에 대한 존중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혼율 통계에서 1~3월이 두드러지게 높다는 사실은, 단지 부부 관계의 위기를 보여주는 숫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명절 문화와 가족 관계를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명절이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다시 ‘따뜻한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와 함께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법원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줄어드는 날, 명절이 비로소 모두에게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명절, 당신 곁의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한 번쯤 조용히 물어봐 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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